“술은 몸에 해롭다는데,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스트레스를 쌓아 병을 만드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진료실에서 종종 듣는 질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하루를 마무리하며 음주로 긴장을 푼다. 몸이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술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될까.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잠깐은 그렇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다’이다. 술을 마시면 뇌에서는 긴장을 줄여주는 신경전달물질인 GABA의 작용이 증가하면서 불안감이 줄고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동시에 도파민도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우리 몸은 술의 진정작용에 균형을 맞추려고 오히려 각성 신경계를 활성화한다. 술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새벽에 자주 깨고,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예민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술로 잠들었는데 다음 날 개운하지 않은 것도 같은 원리다. 즉, 술은 스트레스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잠시 감각을 무디게 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반복될 때다.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을 찾게 되면 뇌는 ‘스트레스=술’이라는 회로를 학습한다. 처음에는 적당량이면 충분했지만, 점차 술의 양이 증가되어야 같은 만족감을 느낀다.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술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한의학에서도 비슷한 관점으로 바라본다. 술은 기혈의 순환을 일시적으로 촉진하여 답답함을 풀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시는 순간에는 울화가 풀리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성질이 뜨겁고 습(濕)과 열(熱)을 만들기 쉬운 음식이다. 자주 마시면 간에 열이 쌓이고 몸에 습담(濕痰)이 생겨 피로감, 불면, 소화장애, 두통, 안면홍조, 혈압 상승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일수록 간(肝)의 기운이 쉽게 울체되는데, 술은 이를 근본적으로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흩어놓는 역할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간의 부담은 더 커지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도 떨어질 수 있다.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 흥미롭게도 연구에서는 술보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기분을 개선하는 효과를 더 오래 지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30분 정도의 걷기나 가벼운 달리기만으로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하고,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취미생활에 몰입하는 것 역시 술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완화 효과를 보인다.
물론 가끔 즐기는 가벼운 음주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특별한 날, 좋은 사람들과 적당히 마시는 술은 삶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법으로 풀지 않고 스트레스를 ‘잊는 방법’으로 술을 찾기 시작했다면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몸과 마음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오늘의 스트레스를 내일의 숙취와 피로로 넘기는 것보다 내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결국 가장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