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총 게시물 330건, 최근 0 건
   
[메디칼럼] 절실함은 도전을 자극한다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5-10-24 (금) 16:30 조회 : 22
물리학의 모든 이론은 가설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그중 ‘질량 불변의 법칙’을 조금 다르게 해석해 보고 싶었다. 우주에서 가장 작은 소립자들이 모여 양성자(+)가 되고, 같은 소립자가 모여 전자(-)가 된다.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해 하나의 원소가 만들어지면 결과는 제로(0)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제로’, 즉 무(無)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삶도 이 법칙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배고픔(-)을 느끼면 음식(+)을 섭취하고, 갈증(-)을 느끼면 물(+)을 마신다. 이러한 행위는 이성의 판단이 아니라 본능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어 원래의 제로(0) 상태로 돌아가려는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함을 느낄 때 움직이고, 결핍이 있을 때 성장한다. 결핍이 없으면 움직일 이유가 사라지고, 성장도 멈춘다.

이 법칙을 사회적 차원으로 옮겨보면 흥미롭다.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빈곤(-) 속에 있었다. 이러한 빈곤은 절실함(+)을 낳았다. “우리도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모두가 하루 24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일하며 경제 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 시절의 절실함은 개인의 생존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풍요 속에서 그 절실함을 잃었다. 편안함은 나쁘지 않지만, 안락함 속에서는 도전이 태어나지 않는다. 물리학적으로 이미 균형이 맞춰진 상태, 다시 말해 제로(0)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이란 위기(-)를 맞은 인간은 다시 제로(0)가 되기 위해 극복의 노력을 통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위기라는 것은 언제나 그 안에 기회를 함께 품고 있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면 더 발전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준비하지 못한 채 무너질 수도 있다.

인간은 위기 속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보인다. 골프를 칠 때도 그렇다. 내기 없이 치는 라운드와 단돈 천 원이라도 걸린 내기 골프는 전혀 다르다. 작은 긴장감 하나가 집중을 바꾸고, 집중이 다시 결과를 바꾼다. 절실함이 만들어낸 미세한 차이가 곧 성장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아웃사이더가 되어 스스로를 ‘최전방’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길을 여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스탠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공학도가 아니었지만, 그들은 아무도 가지 않은 최전방으로 나아가 미래 문명의 인프라를 새롭게 설계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즉 ‘제로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철학적 사유가 현실의 기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안주하지 않고 늘 스스로를 불안정한 경계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풍요로운 일상 속에서 절실함이 사라질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경계로 몰아야 한다.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두고, 익숙하지 않은 일에 도전하며, 위기의 감각을 되살릴 때 인간은 다시 성장한다.

절실함은 고통이 아니라 변화의 전조이며, 위기의식은 우리를 다시 제로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제로로 돌아가기 위해 인간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절실함 더하기 도전은 제로’라는 이 문장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삶의 순환 법칙을 설명한다. 제로에서 시작한 인간이 다시 제로로 돌아가는 순리 속에서 우리는 변화하고, 다시 태어난다.

인간의 능력을 결정짓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자신을 어디에 세우느냐다. 풍요로움의 안쪽이 아니라, 절실함의 경계 위에서 인간은 비로소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
이상찬 세화병원장